소나기
우산 가방 Umbrella bag
우산 하나가 들어가는 용도의 가방. 가볍게 산책을 할 때 갑작스러운 비에 대응한다.
손에 무언가 쥐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. 손은 자유롭게 내버려두어 전화가 오면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거나, 버스를 탈 때 교통카드를 편하게 꺼 낼 수 있게 한다. 아니면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어 마시고자 한다.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밖에 나가면 늘 한 손에 우산을 쥐어야만 했다. 언제 비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. 우산은 젖어있어서 가방 안에 넣을 수도 없는 모양이었다. 손이 자유로운 이족보행의 인간의 모습은 양 손이 자유롭지만 우기 때는 비가 오나 안오나 한 손에는 우산을 쥐어야만 한다. 잠시 우산을 손에서 놓으면 까먹고 어디 놔두고 오기 일쑤였다. 미용실에서도, 기차에서도, 식당에서도. 몇 번이나 우산을 깜빡해 다시 찾아가거나 새로운 우산을 사야만 했다. 우산 딱 하나만 들어갈 수 있는 가방이 있으면 내 몸에 붙어있을텐데. 내 몸에 붙어서 어딜 가나 나를 따라다니고 내 자유로운 두 손을 도와줄 것이다.
아열대
우비가방 poncho backpack
평소엔 백팩이지만 비가 올 때 윗지퍼를 열어 우비로 만들 수 있는 가방. 깜빡하고 우산을 챙기지 않았거나, 우산으로도 비가 가려지지 않을 때 사용한다.
노트북 작업을 하러 카페에 가는 중이다.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진다.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깜빡하고 현관에 펴놓은 우산을 가져오지 못했다. 손으로 비를 가려보지만 빗줄기는 거세질 따름이다. 방금까지 햇볕이 쨍했는데, 비온다는 얘기도 못 들었는데. 다른 사람들도 속수무책으로 비에 젖어 빨리 걸어간다. 운 좋은 몇 명은 우산을 쥐고 있다. 가방 지퍼 사이로 빗물이 들어갈까 가방을 벗어 품에 끌어 안아본다. 조금만 더 걸어가면 도착해서 딱히 우산을 살 필요는 없다. 어차피 조금 있으면 곧 비가 그칠 거라는 것을 안다. 여러 번 이런 일이 있었다. 이럴 때 가방에서 우비가 풍뎅이의 날개처럼 나오면 좋을텐데. 우비가 커다란 날개처럼 내 몸과 가방을 덮어주면 이런 일이 언제든지 생겨도 두렵지 않을텐데 생각한다.
홍수 Hongsoo
튜브 가방
평소엔 가방이지만 폭우로 인한 홍수 시 바람을 불어넣어 튜브처럼 이용해 목숨을 지킨다. 끈을 활용해 급류의 물살도 거스를 수 있을 것이다.
Pokyeom
땀 닦는 손수건 handkerchief for sweat
가방에 릴고리로 연결하여 얼굴 땀을 쉽게 닦을 수 있는 손수건이다. 지퍼를 닫았을 때는 눈 모양의 구다. 열면 손수건이 쏟아져 나온다.
여름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더워지는 것을 느낀다. 아무리 아이스크림을 먹어도, 에어컨을 쬐도, 몸을 식히려하면 할 수록 바깥을 걸으며 숨막히는 더위를 겪는다. 그러다가 어느 날 하루종일 에어컨이 없는 폭염 날씨의 실외에서 몸을 쓰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. 온 몸은 땀에 젖었다. 그렇게 젖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일상 여름이었는데, 땀에 젖고 그 땀이 증발하면서 갑자기 체온이 확 내려가면서 시원해짐을 느꼈다. 하루종일 땀을 흘리다가 시원한 실내 공간에 들어갔을 때 추위에 떨었다. 우리 몸에 이미 체온을 조절하는 기능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자각했다. 그 이후로 땀을 흘리는 것을 긍정하게 되었다.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이 손수건이다. 걸으면서 손만 뒤로 젖혀 손수건을 낚아채 흘리는 땀을 시원하게 닦아낼 수 있다.
눈 Noon
눈뭉치 모양의 핫팩.
추운 겨울날 호주머니에 하나씩 넣어 외출할 수 있는 쌀주머니. 겨울의 흰 눈은 차갑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해서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. 전자레인지 40초 사용하면 30분 동안 온기가 지속된다. 양 손에 눈뭉치를 쥐고 호주머니에 푹 손을 찔러 담아 따뜻한 체온이 유지되는 것을 느낀다.